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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 리뷰

[빛과 동전] 프로그램노트-서울독립영화제 2004(30회)



서울독립영화제 2004(30회) 프로그램노트


어둠은 빛이 있이 있음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렇게 빛은 어둠을 창조했다. 하지만 어둠은 그 빛을 파괴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과 푸르른 하늘, 기름진 대지로 가득한 평화로운 마을에 어느 날 그림자 남자가 찾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가져온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편리함에?점점 길들여져 간다. 하지만 그것은 대가를 요구하는 편리함이었다. 그림자 기계를 움직이기 위해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마을을 비추던 빛을 희생해야 했던 것이다. 

회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드로잉과 캐릭터 등 환상적이고 개성적인 스타일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 <빛과 동전>은 현대 문명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매몰돼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임을 잃어버린 현대인에 대한 우화이다. 편리함의 대가로 사라지는 빛, 그 결과 생겨난 무채색의 풍경과 그림자는 자동화로 대표되는 현대 기계문명의 이면, 어둡고 모순된 단면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직접 땅을 일구던 마을 사람들이 기계의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그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해 동전을 생산하는 영화 속 모습은 자급자족과 물물교환 중심의 농경사회에서 모든 것이 화폐가치로 치환되는 자본주의 사회로의 전이와 일치한다. 하늘의 빛을 빨아들여 만든 그림자 동전은 기계를 움직여 인간들을 편안하게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어왔던 것일까? 온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던 빛 대신 거짓조명을 갖게 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싸움을 벌이다 결국 다른 이의 것을 빼앗기까지 하는 아둔한 인간들. 이렇듯 영화는 제목 그대로 자연을 상징하는 ‘빛’과 진보라는 미명하에 그 자연을 파괴하는 기계문명, 자본주의 문명을 상징하는 그림자 ‘동전’을 대비시켜 현대 물질문명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모은영 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


http://siff.or.kr/siff/archive/archive.php?mov_idx=432&archive_tab=showing&fes_year=2004&cate_idx=81033&gubun_idx=&sec_idx=&sch_word=&size=10&page=3